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live or undead

반응형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었다.

"왜? 술 모자라니 더 사오라고?"

"아니. 작업해야지. 그러고 보니 넌 벌써 마무리까지 다 끝냈나 보지? "

어느 정도 핀잔 섞인 말을 뱉으며 술통과 잔을 멀리 치워버린 라이너스는 다시 작업

을 하기 시작했다. 알코올의 기운인지 약간 떨리기는 했다만. 움직이는 손과 눈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

 카시오는 말없이 일어나서 빈 술잔(?)을 든 채 방구석에 놓여있는 침대에 덜퍼덕

몸을 내던지듯 않았다. 먼지가 좀 많기는 했다만 이미 그는 그런 걸 신경쓸 기분이

아니었다.

 '마무리를 해? 그런 걸 하면 뭐해.... 어차피 해보았자 또 네 녀석에게 질게 뻔한

데.'

술기운에 물든 채 라이너스의 작업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그의 눈은 어떤 종류의 감

정들로 인해 점차로 가늘어지고 있었다.  평소엔 이성으로 묶어서 마음속에 깊숙이

쳐박아놓았던 감정들이지만 술에 의해 이성의 포박이 느슨해지자 마음의 겉표면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리라.  '친구'의 재능에 대한 질투심과 미움이. 그 마이너스적

인 두 감정은 서서히 그의 마음을 변질시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의 뇌리마저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가 이성으로 잡고 있던, 평소에 쓰고 있던 '친구'의

 가면은 이미 얼굴에서 사라져 있었다. 친구의 가면이 사라진 이상 남은 것은 원초

적인 질투와 미움뿐.




쨍!

순간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에 라이너스는 소리의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카시

오가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자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산산이 틴沮?嗤?시약

병과 같이.


"술이 너무 과한 거 아냐? 주정은 그만 하라고..  그거 계속하다 보면 몸버린다."


라이너스는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을 던지고선 다시 작업하던 걸로

눈을 돌렸다. 그런 라이너스의 행동은 카시오의 질투심과 미움을 증폭시키기에 충분

했다. 카시오는 세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아직 멀었어. 네 녀석이 없는 세상에 가려면 이 정도론 부족하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 주정 부릴 시간 있으면 과제에 조금더 손보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다간 나

하고 네이드를 이기기는커녕. 다른 녀석들에게도 형편없이 밀릴걸. 슈트라인에서 살

아남는 길은 끝없는 노력뿐이라는 걸 잊었나보지?"

'....그건 네 녀석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카시오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라이너스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별의별 갖가

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 두명을 넘어 본적이 없었다. 그

건 이번에 졸업하는 모든 졸업예정자들에게 공통된 상황이기도 했다.

 네이드에게 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졸업예정자들과는 달리,

 집안의 배경도, 재산도, 신분도. 아무 것도 없는 녀석이니까. 다른 모든 면에서 앞

서기 때문에 한가지 정도 밀리는 것 정도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하는 이들

도 있을 정도로 가볍게 여겨왔다. 하지만. 라이너스에게 밀리는 것은 그것과는 전혀

 사태가 달랐다. 어떤 면을 보더라도 자신보다 못한 구석, 아니 자신과 비슷한

구석도 없이 전부 위인 녀석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고 어떻게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비참한 일이었다.




"제기랄. 누구라도 좋으니. 네 녀석을 죽여줬으면 줬겠군. 설사 그게 악마라도 말이

야."

 친한 친구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나왔지만. 그걸 듣고도 라이너스는 별로 흥분

하지 않았다. 약간 눈이 날카로워 진 것과 눈빛에 경멸하는 빛이 섞이기 시작한 것

을 제외하면.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시간이 있으면 가서 조금더 파시지 그래?

 시답잖은 불만타령을 털어놓고 싶거든 다른 한가한 녀석을 찾아보라고. 난 지금 바

쁘니까."





'빌어먹을...'

카시오의 다리에 힘이 서서히 빠지더니, 그는 마침내 자리에 주저 않고 말았다. 그

와 동시에 빳빳하게 들려있던 고개도 언제 그랬었냐는 듯. 축 처졌다. 결국 술의 기

운을 빌려서 폭발시킨 내면의 감정은 기껏 자신의 열등감을 상대에게 확인시켜주는

것밖에 되지 못했던 것이다. 남은 것은 실수했다는 자기 비하와 들어내지 않았다면

 얻을지도 몰랐던 이익들에 대한 아쉬움뿐.

 "너란 놈은... 분명히 신이 실수해서 만들어 낸 놈이 분명해. 적어도 하나만이라도

 내가 너보다 나은 게 있었다면.  이런 뭐같은 기분은 안들 텐데..."

 "칭찬으로 알아두지. 빨리 네 방에 가서 침대하고 키스나 하고 있으시지. 내일 편

해지려면 말이야."

"예에. 천재 도련님. 누구라고 도련님의 말에 거역하겠습니까? 하물며 이 멍청한 놈

이 그런 고귀한 분의 말씀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젠장. 악마의 축복과 귀

신의 가호를 빌어주지."


마지막까지 악담을 퍼붓던 카시오의 모습이 문닫는 쾅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던 라이너스의 얼굴엔 야릇한 호선이 떠올랐다. 언뜻

보기엔 비웃음 같았지만, 비웃음이라 보기는 좀 서글픈 듯한.


'네이드.. 이거 보면 되게 웃기겠지? 졸업할쯤 되니.. 결국 주변의 놈들이 속을 드

러내는군... 내 주위의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저런 놈들이지.. 이익과 배경을 위한

겉치레만의, 부드러운 가면을 쓴 무리들.. 지금 저렇게 감정을 들어내는 놈이 더 역

겨운 건지... 아니면 아직까지 꿋꿋이 가면을 쓰고 있는 놈이 역겨운 건지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히히덕거린 내가 제일 역겨운 건지.. 잘 모르겠다...역시..

나에게 뭘바라지 않는 놈은 너밖에 없는 듯하구나..자식아 빨리 와라.. 보고 싶다.

'


같은 시각. 아크라이즈의 어느 구석에서는 묘한 의논이 진행되고 있었다.

"라이너스 페이드라라...확실히 뛰어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전에 조사했던 인물

보다는 한수 뒤진다는 느낌이..""

"게다가 페이드라가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니.. 결국 다른 편에서 보자면. 제거 대상

이겠군요."

"자그난트가쪽에서 보면 그렇겠지.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아닌가? 그나저나 발

샤스는?"

"확인해볼것도 있고. 돈도 벌겸 해서 미터하인으로 간다던데. 아직 안 왔나 보죠."

"...그런가.."

반응형

댓글

-->